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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의 재해석

『장자』와 탈진 시대의 유연한 존재 방식 (무위자연, 느슨함의 미학, 탈진 이후의 철학)

by info-happyblog-2504 2025. 6. 13.

『장자』와 탈진 시대의 유연한 존재 방식 (무위자연, 느슨함의 미학, 탈진 이후의 철학)

『장자』는 무엇을 억지로 하지 않는 ‘무위(無爲)’와 자연의 흐름에 맡기는 삶의 자세를 강조합니다. 오늘날 우리는 지나친 자기계발과 성과 중심의 문화 속에서 탈진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이 글은 『장자』의 철학을 통해, 지금 우리가 회복해야 할 유연함과 느슨함의 가치를 되새겨 봅니다.

 

『장자』와 탈진 시대의 유연한 존재 방식 (무위자연, 느슨함의 미학, 탈진 이후의 철학)

 

1. ‘탈진의 시대’에 사는 우리

현대인은 전보다 더 많은 자유와 도구를 가졌지만, 그만큼 더 많은 불안과 책임을 짊어진 삶을 살고 있습니다. 자기계발, 커리어 성장, 감정 관리, 인간관계, 헬스, SNS까지… 우리는 ‘잘 살아야 한다’는 압박 속에서 쉼 없이 자신을 관리합니다.

그 결과, 어느 순간 무기력과 무감각에 빠진 탈진 상태를 겪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괴롭고, 무언가를 하려 하면 지칩니다. 『장자』는 말합니다. “물고기는 물을 잊고 살고, 인간은 도(道)를 잊고 산다.” 즉, 삶의 본질과 흐름을 잊고 무언가 되기 위해 지나치게 애쓰는 것이 오히려 인간을 병들게 만든다는 통찰입니다.

2. 장자가 말한 ‘되는 것보다 그냥 있는 것’

『장자』는 모든 존재는 본래 완전하며, ‘유용함’이나 ‘성과’를 기준으로 존재의 가치를 판단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는 쓸모없다고 여겨진 크고 뒤틀린 나무를 예로 들며, 그 나무는 베이지 않기 때문에 오래 살아남는다고 말합니다.

즉, ‘쓸모 없음’이 오히려 생존과 자유의 조건이라는 역설을 제시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도 ‘무언가가 되지 못한 나’에게 실망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장자는 묻습니다. “그냥 존재하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은가?”

이 질문은 탈진 상태의 우리에게 큰 위로가 됩니다. 성과나 명확한 목표 없이도, 존재 자체로 의미 있다는 믿음—그것이 탈진 이후 삶의 태도일 수 있습니다.

3. 유연함이 살아남는다

『장자』는 수많은 우화를 통해 ‘유연한 것이 강한 것을 이긴다’는 메시지를 반복합니다. 예컨대, 단단한 얼음은 쉽게 깨지지만 물은 어떤 틀에도 들어가고 결국 돌도 깎아냅니다. 이는 오늘날 회복탄력성(resilience)이라는 개념과도 닮아 있습니다.

탄력성은 강함이 아니라, 부드럽고 유연한 존재일 때 발휘됩니다. 성과 중심의 문화는 경직된 사고를 요구하지만, 오히려 그 속에서 탄력 있게 흔들리는 유연함이 정신 건강과 창의성, 관계 유지에 더 중요한 자질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장자』의 철학은 이러한 변화에 오래전부터 답을 주고 있었던 셈입니다.

4. 아무것도 하지 않는 용기

『장자』에서 가장 인상 깊은 장면 중 하나는 장자가 나비가 되는 꿈을 꾸고, 깨어난 뒤 ‘내가 장자인가, 나비인가’를 고민하는 대목입니다. 이 장면은 자기 정체성과 경계조차 흐릴 수 있는 유연함을 상징합니다.

현대 사회는 정체성에 집착합니다. “나는 어떤 사람이어야 하지?”, “내가 뭘 잘하지?”, “어떤 이미지를 유지해야 하지?” 이러한 질문은 때로 자기 소진의 이유가 되기도 합니다. 『장자』는 이런 순간에 “그냥 좀 흘러가도 된다”, “나비든 장자든 중요한 건 지금 살아 있다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 무가치하게 느껴질 때, 그 자체가 회복이며 철학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결론: 유연한 존재가 결국 살아남는다

『장자』는 오늘날 번아웃을 겪는 현대인에게 가장 따뜻한 철학서입니다. 무리해서 무언가 되려 하지 말고, 지금 있는 나를 인정하고 흘러가도록 두라는 조언. 그것은 도피가 아니라 삶의 깊이에 닿는 용기입니다.

강한 사람보다 오래 버티는 사람, 많이 한 사람보다 잘 쉬는 사람. 그가 진짜로 자기 삶을 자기답게 살아가는 존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