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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의 재해석

『토지』, 오늘날의 도시 문제와 닮다 (이민자, 계층, 토지소유)

by info-happyblog-2504 2025. 4. 19.

박경리의 『토지』는 한국 문학사에서 가장 방대한 스케일의 대하소설로 평가받습니다. 1897년부터 해방 직후까지, 민족의 운명과 개인의 삶을 교차시키며, 그 속에 ‘토지’를 둘러싼 다양한 인간 군상을 펼쳐 보입니다. 그러나 이 작품은 단순히 과거를 회고하는 역사소설이 아닙니다. ‘이주와 정착’, ‘계층 분화’, ‘토지의 사적 소유’라는 키워드에서 오늘날 도시 문제와 놀라운 유사성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토지』를 통해 현재 우리가 마주한 도시 문제를 되돌아봅니다.

 

『토지』, 오늘날의 도시 문제와 닮다 (이민자, 계층, 토지소유)

 

 

떠나는 사람들과 들어오는 사람들: 이민자와 이주 노동

『토지』의 주요 인물들은 끊임없이 ‘이동’합니다. 최참판댁의 몰락과 함께 서희는 평사리에서 간도로 떠나고, 많은 인물들이 일본, 만주, 연해주로 흩어집니다. 이 이동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삶의 생존 전략이자 식민지 시대의 현실을 반영하는 장치입니다. 이러한 이주의 패턴은 오늘날 도시 속 이민자와 이주 노동자의 현실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삶의 터전을 잃고 더 나은 조건을 찾아 떠나는 사람들, 새로운 공간에 정착하며 ‘낯선 이’로 취급받는 이들의 경험은 『토지』의 인물들과 유사합니다. 특히 간도에 정착한 인물들이 토착민과 갈등을 겪거나, 현지 문화와 충돌하면서도 새로운 정체성을 형성해가는 과정은, 현대 도시의 다문화 현상과 그대로 겹쳐집니다. 또한 『토지』는 이주민 내부의 계층 구조를 보여줍니다. 간도에 먼저 정착해 터를 잡은 이들과, 나중에 도착한 이들 간의 위계는, 현대 도시에서 ‘선주민’과 ‘신규 유입자’ 사이의 갈등 구조를 예견하듯 드러냅니다. 이처럼 『토지』의 이주 서사는 공간의 문제를 넘어서 소속감, 권리, 그리고 경계의 문제로 확장됩니다.

계층의 고착과 반복: 현대 도시 속 불평등 구조

『토지』의 서사는 ‘토지를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의 이야기로 나뉩니다. 최참판댁은 몰락하지만, 새로운 지주와 상인, 관료들이 떠오르며 신흥 계층이 형성되고, 또다시 새로운 불평등 구조가 만들어집니다. 박경리는 토지라는 물리적 자산이 어떻게 계층을 결정하고, 그 계층이 세대를 거치며 반복되는지를 집요하게 그려냅니다. 이 구조는 현대 도시의 부동산 중심 자본주의와 매우 닮아 있습니다. 서울 강남, 뉴욕 맨해튼, 런던의 중심지와 같은 지역에서 부동산 소유 여부가 곧 계급을 의미하는 사회는 『토지』 속 세계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토지를 가진 자는 세습과 임대를 통해 자산을 유지하며, 그렇지 못한 사람은 점점 주변부로 밀려납니다. 특히 『토지』에서 인물들은 신분의 한계를 뚫고자 교육, 결혼, 이민 등을 선택하지만, 사회 구조는 이들의 상승을 쉽사리 허용하지 않습니다. 현대 도시에서도 사회이동의 통로는 점점 좁아지고, 불평등은 고착화되며 세습화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박경리는 단지 ‘토지를 잃은 사람들의 분노’만을 말하지 않습니다. 그는 계층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유지되며, 그것이 인간관계와 정체성까지 어떻게 영향을 주는지를 섬세하게 해부합니다. 이 점에서 『토지』는 오늘날 도시의 불평등 구조에 대한 문학적 진단서로 읽힐 수 있습니다.

소유는 누구의 것인가: 토지에서 땅값으로

『토지』라는 제목이 말해주듯, 이 작품의 중심은 ‘땅’입니다. 땅은 단지 생산수단이 아니라, 가문의 정체성, 삶의 터전, 존재의 증명 그 자체입니다. 그러나 작품 속에서는 점점 소유가 삶이 아닌 권력과 수익의 수단으로 변질됩니다. 최참판댁의 몰락 이후, 토지는 더 이상 누군가의 뿌리가 아니라, 사람 사이를 이동하며 권력 관계를 형성하는 ‘상품’이 됩니다. 땅을 가진 자는 지배하고, 없는 자는 종속됩니다. 이 구조는 현대 도시의 ‘부동산 투기’와 닮아 있습니다. 오늘날 토지는 더 이상 살기 위한 공간이 아니라, 투자와 투기의 대상이 되어 버린 현실을 반영합니다. 『토지』 속 인물들은 땅을 잃고, 떠나고, 다시 돌아오려 하지만, 소유권이란 이름 앞에서 무력해집니다. 이는 오늘날 재개발, 젠트리피케이션, 임대차 분쟁과도 닮아 있습니다. “이 땅은 누구의 것인가?”라는 질문은 100년 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유효합니다. 박경리는 『토지』를 통해 ‘소유’라는 개념 자체에 의문을 제기합니다. 진정한 공동체란 토지를 가진 자가 아닌, 그 땅에 ‘살아가는 자들’의 관계 속에서 형성되어야 함을 암시합니다. 이 점에서 『토지』는 경제적 자산의 문제를 넘어서, 삶의 조건과 공동체 윤리를 성찰하게 만드는 작품입니다.

『토지』는 단순한 역사소설이 아닙니다. 그것은 이주와 계층, 토지 소유를 둘러싼 복잡한 인간사의 축소판이며, 오늘날 도시 문제를 미리 성찰한 고전입니다. 이 작품을 통해 우리는 지금의 도시가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고 있는지에 대한 단서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토지』는 어제의 이야기가 아니라,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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