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맹자의 주장 – 인간은 본래 선하다
맹자는 말합니다.
“사람의 성품은 선하다(性善).”
그는 인간이 본래 타인의 고통에 공감할 수 있는 존재라고 봤어요.
대표적인 예가 우물가에 빠지는 아이를 본 사람이
이득이나 명예 때문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돕고 싶어 하는 마음(측은지심)**을 예로 들죠.
그 마음은 본능적으로 모두에게 있다는 게 맹자의 주장입니다.
맹자는 말합니다:
- 사람은 악해서 타락하는 것이 아니라
- 환경과 습관이 그 본성을 가리는 것이라구요.
즉, 인간은 본래 착하고 따뜻하며, 올바르게 자라면 누구나 선해질 수 있다는 겁니다.
2. 그런데 현실은 왜 이럴까요?
문제는 우리가 사는 현실의 인간관계입니다.
- 직장에서는 뒷말이 오가고
- SNS에서는 질투와 비교가 넘쳐나며
- 뉴스엔 온갖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죠
“과연 인간이 선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 질문이 당연하게 들리는 이유는,
우리가 타인으로부터 상처받은 경험이 많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자기를 먼저 챙기고, 손해 보기 싫어하며, 친절도 계산적으로 보입니다.
이런 모습은 맹자의 주장과 너무도 다르죠.
혹시 순수한 선함은 이상일 뿐, 현실은 경쟁과 이해득실의 세계가 아닐까요?
3. 사실 맹자의 말은 틀린 게 아닐지도?
하지만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정말 인간 본성이 악해서 그런 걸까,
아니면 사람들이 마음을 지킬 여유 없이 몰려 있기 때문일까?
예를 들어,
- 버스에서 힘겹게 짐을 든 노인을 보면 자연스럽게 자리 양보하는 사람
- 길에서 넘어지는 아이를 보면 도와주는 낯선 사람들
- 재난 앞에서 기꺼이 기부하고, 달려가는 이웃들
우리는 여전히 순간순간 선함을 본능적으로 드러내는 존재이기도 합니다.
맹자는 그런 인간의 가능성을 믿었고,
그 가능성을 교육, 도덕, 훈련으로 키울 수 있다고 본 것입니다.
그렇다면 문제는 인간 자체가 아니라, 환경과 구조일 수 있어요.
4. 성선설이 오늘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
맹자의 철학은 단순한 낙관론이 아닙니다.
그는 인간이 선한 본성을 지켰을 때 사회도 함께 좋아질 수 있다는 희망을 말했어요.
현대의 인간관계는 복잡하고 상처도 많지만,
그래서 더더욱 사람 안의 선한 마음을 되살리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 “내가 먼저 친절하게 대하면 어쩌면 돌아올지도 몰라.”
- “타인을 의심하기 전에 한번 믿어볼 수 있을까?”
- “누군가를 이해하려는 노력은 나부터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성선설은 단지 ‘사람은 착하다’가 아니라
“사람은 선할 수 있는 존재다. 그걸 잊지 말자”는 철학적 믿음입니다.
5. 결론 – 누구 말이 맞았을까?
맹자는 아마 오늘날의 세상을 보며 씁쓸한 미소를 지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동시에 이렇게 말할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은 선할 수 있다.”
성선설은 현실을 외면하는 이상이 아니라,
현실 속에서 우리가 지켜야 할 가장 중요한 인간에 대한 기대입니다.
이해타산을 넘어선 한 사람의 따뜻함,
그것이 맹자가 말한 ‘성선’의 실현이며,
오늘 우리가 다시 꺼내야 할 가장 오래된 희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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