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크와 그의 주인, 계급의식과 현대적 ‘갑을관계’

디드로의 희곡 《자크와 그의 주인》은 인간관계 속 위계 구조와 계급의식을 풍자합니다. 이 작품을 통해 현대 사회의 ‘갑을관계’와 권력 불균형의 본질을 통찰할 수 있습니다. 과거의 주종관계는 어떤 방식으로 오늘날의 조직문화와 계약사회에 재현되고 있을까요?

 

 

디드로의 풍자극, 계급사회에 대한 도전

《자크와 그의 주인》은 18세기 계몽주의 시대에 쓰인 작품으로, 디드로는 기존의 희극적 형식에 도전하며 위계질서를 해체하고자 했습니다. 주인공 자크는 하인임에도 불구하고 지적이고 철학적인 인물로 묘사되며, 그의 ‘주인’은 권위만 있고 실속 없는 존재로 표현됩니다.

현대 사회에서도 우리는 여전히 다양한 형태의 위계 질서 속에서 살아갑니다. 회사의 상사와 부하 직원, 계약 관계의 클라이언트와 프리랜서, 플랫폼과 사용자 사이에도 보이지 않는 ‘주종구조’가 존재합니다. 이 점에서 자크와 그의 주인의 갈등은 단순히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라, 오늘날 인간관계의 본질적 문제를 반영한 구조입니다.

‘갑을관계’로 되살아난 계급의식

오늘날의 ‘갑을관계’는 단순한 상하 관계가 아닌, 사회 구조 속 권력의 비대칭을 반영한 표현입니다. 특히 노동 시장에서는 정규직과 비정규직, 원청과 하청 등 다양한 형태의 신분 구조가 유지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구조는 계약 관계 속에서 ‘을’에게 책임은 떠넘기고, ‘갑’은 권한을 행사하는 방식으로 지속됩니다.

《자크와 그의 주인》에서 주인은 자크에게 여행 계획을 맡기면서도, 일이 잘못되면 자크를 탓합니다. 이는 현대 회사에서 상사가 결정한 업무를 실무자가 떠맡고, 문제가 생기면 하위직에 책임을 전가하는 구조와 닮아 있습니다.

평등한 관계는 가능한가? 현대적 대안 모색

《자크와 그의 주인》은 형식적으로도 파격적입니다. 줄거리 없이 에피소드 형식으로 구성되며, 작가가 대사 중간에 직접 개입하는 방식으로 전통적 권위와 구조에 대한 반항을 표현합니다. 이는 인간 관계에서도 고정된 위계와 권위는 해체될 수 있음을 시사합니다.

현대 사회 역시 이러한 고정된 ‘서열’ 구조에서 탈피하기 위한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수평적 조직, 프리랜서 중심 경제 등은 모두 갑을관계의 해체를 위한 시도입니다. 하지만 구조적 한계와 문화적 저항이 여전히 존재합니다.

결론: ‘자크’는 사라지지 않았다

《자크와 그의 주인》은 시대를 초월한 이야기입니다. 과거의 주종관계는 오늘날 다양한 사회 구조 속 ‘갑을관계’로 변형되었고, 인간은 여전히 권력과 책임의 불균형 속에서 갈등합니다.

진정한 평등은 제도로만 완성되지 않습니다. 그것은 서로를 동등한 인격체로 인정하는 문화적 자각과 윤리적 성숙에서 비롯됩니다. 디드로의 작품은 그런 관점에서, 오늘날 우리 사회의 거울이자, 미래를 위한 철학적 제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