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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의 재해석

「홍길동전」 속 ‘합리적 복수’는 지금도 통할까?

by info-happyblog-2504 2025. 4. 13.

1. 복수의 고전, 그러나 유혈이 아닌 정의였다

우리는 보통 '복수'라는 단어에 피와 칼, 감정의 격랑을 떠올린다. 하지만 허균의 「홍길동전」 속 복수는 조금 다르다. 홍길동은 서자로 태어나 차별을 받지만, 단순히 분노로 사적 보복을 하지 않는다. 대신 그는 이성적인 계획을 세우고, 집단적인 정의 실현으로 자신의 억울함을 증명한다. 그가 활빈당을 이끌며 탐관오리를 벌하고 백성을 돕는 모습은 ‘복수’의 폭력성을 넘어 ‘사회적 문제 해결’의 한 형태로 읽힌다. 지금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도 이 '합리적 복수'라는 키워드는 다시금 의미 있게 다가온다.

 

 

2. 감정보다 체계, 분노보다 메시지

「홍길동전」 속 ‘합리적 복수’는 지금도 통할까?

내가 「홍길동전」을 처음 다시 읽었을 때 가장 인상 깊었던 건 그의 냉정함이었다. 홍길동은 불합리한 현실에 분노하지만, 그 분노를 폭력적 파괴가 아닌 사회적 시스템 바꾸기로 전환시킨다. 그는 권력을 쥐기 위해 싸운 게 아니라, 스스로 이상적인 나라 율도국을 건국하며 '더 나은 사회'라는 방향을 제시한다. 이 모습은 지금 우리 사회에서도 회자되는 '건설적인 저항'이라는 개념과 맞닿아 있다. 단순한 비판이나 감정 폭발이 아니라, 논리와 비전으로 무장한 복수는 훨씬 강력하고 지속적이다.

3. 현대 사회의 ‘합리적 복수’는 어떻게 가능할까

오늘날에도 우리는 수많은 부조리와 차별 속에 살아간다. 회사에서의 부당한 평가, 사회 시스템 속 차별, 정치적 불의 등 다양한 억울함이 존재한다. 하지만 그에 맞선 대응은 여전히 감정적인 경우가 많다. 나도 그런 상황을 겪었을 때, 처음에는 소리치고 싶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내가 나아지는 것으로 복수하자’**는 생각이 들었다. 홍길동이 활빈당을 만든 것처럼, 나는 더 나은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으로 내 감정을 정리해냈다. 이처럼 현대 사회에서의 복수는 ‘보복’이 아니라 ‘도약’일 수 있다. 이 점에서 홍길동의 복수 방식은 여전히 유효하다.

4. 합리적 복수는 자기 정체성의 회복이다

홍길동이 진정으로 원했던 건 '아버지의 인정을 받는 것'도, '적을 없애는 것'도 아니었다. 그는 오히려 자신이 누구인지를 증명하고자 했다. 즉, 서자라는 한계를 넘어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여정이었던 것이다. 현대인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에게 진짜 필요한 복수는 누군가를 쓰러뜨리는 게 아니라, 나를 증명하고 나답게 살아가는 것이다. 나를 얕보았던 사람들 앞에서 ‘성공’이라는 방식으로 복수하는 것보다, 내가 나로서 충분히 행복하다는 걸 보여주는 게 더 강력하다. 그런 점에서 「홍길동전」은 복수의 기준을 ‘이기기’에서 ‘살아남기’로 바꿔놓는다.

5. 결론: 복수는 이성이 만들고, 삶이 완성한다

요즘도 불공정과 불합리의 이야기를 들으면, 나는 종종 「홍길동전」을 떠올린다. 그는 칼을 들었지만, 그보다 더 날카로운 건 신념과 이상이었다. 복수라는 감정은 누구나 가질 수 있지만, 그것을 어떻게 실현하느냐는 결국 ‘이성의 문제’다. 홍길동처럼 내 감정을 눌러 더 나은 방향으로 전환할 수 있다면, 그것이 진짜 의미 있는 복수 아닐까. 결국, 합리적 복수란 나를 파괴하는 게 아니라 나를 완성하는 과정이다. 그리고 그 여정은 지금 이 시대에도 충분히 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