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펜하우어』와 염세주의, 고통 속 삶을 긍정한다는 것 (의지, 고통, 존재의 허무에 대한 철학적 사유)
“삶은 끊임없는 결핍을 메우려는 무의미한 투쟁이다.” 아르투어 쇼펜하우어는 인간의 삶을 이렇게 요약했습니다. 그는 인생의 본질이 기쁨이나 목적이 아니라, 고통 그 자체라고 보았으며, 그 고통의 근원을 ‘의지’라는 개념으로 설명했습니다. 이 글에서는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를 중심으로, 삶의 무게를 감당하는 철학, 그리고 그 속에서 존재를 긍정하는 방법을 함께 모색합니다.
1. 인간은 원하는 존재이기에 불행하다
쇼펜하우어는 말합니다: “우리는 존재하기 위해 원하고, 원하기에 고통받는다.”
그가 보기에 인간은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갈망하는 존재입니다. 이 갈망은 결핍에서 시작되고, 충족되면 일시적인 만족이 찾아오지만 곧 새로운 결핍이 고개를 듭니다. 이러한 끝없는 갈망의 구조를 그는 ‘의지’라 불렀습니다.
의지는 본능이나 욕망이 아니라, 존재 그 자체를 움직이는 비합리적이고 맹목적인 에너지입니다. 의지는 우리를 생존하게 하지만, 동시에 끊임없는 결핍과 불안정한 삶을 만들어냅니다.
이 철학은 오늘날의 현대인—무한 경쟁, 과도한 기대, 소셜 미디어 속 비교—에 그대로 적용됩니다. 우리는 항상 ‘더 나은 삶’을 향해 달리지만, 그 끝은 늘 부족함과 피로입니다.
2. 고통은 예외가 아니라 삶의 본질이다
쇼펜하우어에게 있어 고통은 삶에서 피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삶 자체를 구성하는 핵심 요소입니다. 그는 쾌락은 단지 고통의 일시적 중단에 불과하다고 말합니다.
예를 들어, 배고픔은 고통이고, 음식을 먹으면 그 고통이 사라지지만, 곧 다른 욕구가 생겨나고 다시 고통이 시작됩니다. 그는 말합니다: “행복이란 고통이 없는 상태일 뿐, 그것 자체로 실체적이지 않다.”
이러한 시각은 삶을 어둡게만 볼 수 있게 만듭니다. 그러나 쇼펜하우어는 단지 비관만을 말한 것이 아닙니다. 그는 삶의 진실을 직면함으로써, 오히려 더 깊은 이해와 수용이 가능하다고 봤습니다.
즉, 고통을 받아들이고 이해할 때, 우리는 삶의 외형이 아닌 본질에 가까워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3. 고통을 초월하는 길은 ‘의지’의 부정이다
쇼펜하우어는 ‘의지’를 부정하거나 약화시키는 삶의 태도를 통해 고통을 줄이고 내면의 평화를 얻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가 제시한 구체적인 방식은 다음과 같습니다:
- 금욕주의적 삶: 욕망의 충족보다 절제를 택하는 삶
- 예술 감상의 몰입: 의지로부터 잠시 해방되는 순간
- 동정심과 자비: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고 돕는 행위
특히 예술은 의지의 압박에서 벗어나 순수한 직관과 몰입을 가능하게 해주는 탈출구입니다. 음악, 미술, 문학 같은 예술 행위는 삶의 무의미함 속에서도 아름다움과 질서를 느끼게 해주는 유일한 순간입니다.
이러한 철학은 ‘즐거움을 추구하라’는 현대 사회의 쾌락주의와 반대되지만, 오히려 진정한 평온과 자기 해방을 위한 깊은 제안이 됩니다.
4. 염세주의는 절망이 아니라, 깊은 수용의 지점이다
많은 사람들은 쇼펜하우어의 철학을 ‘부정적’이라 평가하지만, 그의 염세주의는 단순한 포기가 아닙니다.
그는 인간이 삶의 고통과 허무를 인정할 때, 오히려 거기에 얽매이지 않고 더 자유로워질 수 있다고 말합니다.
삶은 고통스럽고, 그 고통은 멈추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 타인과 고통을 나눌 수 있고,
- 잠시의 미를 느낄 수 있고,
- 욕망을 비움으로써 가벼워질 수 있습니다.
그는 말합니다: “현명한 사람은 덜 고통받을 줄 아는 사람이다.”
결론: 고통을 아는 자만이 삶을 긍정할 수 있다
쇼펜하우어의 철학은 삶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법을 가르쳐줍니다. 그는 고통에서 도망치기보다, 고통을 인정하고, 그것을 통해 성장하는 인간상을 제시했습니다.
이 철학은 지금 이 순간에도 무의미함과 피로감에 짓눌리는 이들에게 말합니다: “삶은 괴롭지만, 그 괴로움조차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고요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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