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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의 재해석

자크와 그의 주인, 계급의식과 현대 ‘갑을문화’ (디드로, 계급구조, 갑질현상)

by info-happyblog-2504 2025. 5. 11.

디드로의 희곡 『자크와 그의 주인』은 고전적 계급질서를 풍자하면서 인간 관계의 위선과 불평등을 드러냅니다. 이 글에서는 자크와 주인의 대화를 통해 드러나는 계급의식이 오늘날 ‘갑질’ 문화와 어떤 연결점을 갖는지 분석하며, 현대 사회의 위계 구조에 대한 문학적 성찰을 시도합니다.

 

자크와 그의 주인, 계급의식과 현대 ‘갑을문화’ (디드로, 계급구조, 갑질현상)

 

1. 『자크와 그의 주인』: 누가 주인이고 누가 종인가

디드로의 『자크와 그의 주인』은 18세기 프랑스 계몽주의 문학 중에서도 독특한 구성을 가진 작품입니다. 전체는 자크라는 하인의 시점에서 펼쳐지며, 그의 인생 이야기, 특히 “사랑 이야기”를 중심으로 주인과 하인의 역할이 계속해서 역전되는 상황이 반복됩니다.

표면적으로는 자크가 ‘하인’이고 그의 동행자는 ‘주인’이지만, 대화의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독자는 점차 둘 사이의 위계가 사실상 허구적임을 깨닫게 됩니다. 자크는 끊임없이 철학적인 질문과 관찰을 던지며 주인의 무지를 드러내고, 주인은 자크의 이야기에 의존하게 됩니다.

디드로는 이 작품을 통해 사회적 신분과 지적·도덕적 자질이 반드시 일치하지 않음을 비꼬며, 인간의 평등성에 대한 메시지를 은유적으로 전달합니다. 이는 당대 귀족 사회에 대한 풍자이자, 형식적 권위가 본질적 우월성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통찰을 담고 있습니다.

2. 현대의 ‘갑을문화’: 위계의 환상과 감정적 착취

오늘날 대한민국 사회에서 '갑을관계'는 단순한 계약상의 관계가 아닌, 권력의 위계와 그에 따른 정서적·경제적 종속의 구조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직장 내 상사-부하, 고객-직원, 원청-하청, 교수-조교 등의 관계 속에서 권한을 가진 자(갑)는 자주 그 권한을 감정적으로 소비합니다.

『자크와 그의 주인』에서처럼 겉으로 보이는 지위와 실제 역할은 종종 엇갈립니다. 많은 직장인은 실질적인 업무의 중심에서 일하지만, 의사결정권과 존중은 ‘이름값’ 높은 갑의 몫입니다.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갑질’은 단순히 권력의 남용이 아니라, 계급 의식이 내면화된 구조적 병리라 할 수 있습니다.

고객이라는 이름으로 무제한 권리를 행사하려는 소비자 행태나, 권력 위치에 있는 사람의 말을 '진실'로 받아들이는 조직 문화는 현대판 ‘주인-하인’ 구조를 지속적으로 강화합니다. 디드로의 작품에서 주인이 자크의 말을 끊고 무시하다가도 결국 자크에게 의존하게 되는 장면은, 오늘날 실무자는 고되고 책임은 위로 향하는 구조와 맞닿아 있습니다.

3. 계급의식을 넘어서려면: 문학이 주는 감정적 거리두기

『자크와 그의 주인』은 현실의 위계 질서를 그대로 묘사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끊임없는 대화, 반복되는 이야기 속 이야기 구조를 통해 관객(독자)이 위계를 낯설게 느끼게 하는 장치를 사용합니다. 디드로는 이를 통해 우리로 하여금 ‘당연하다고 믿는 위계’를 다시 질문하게 합니다.

오늘날의 ‘갑을문화’ 역시 그 구조를 인지하는 순간에만 해체될 가능성이 생깁니다. 그러나 많은 경우, 사람들은 자신이 ‘을’의 위치에 있어도 언젠가 ‘갑’이 될 수 있다는 환상 속에 살아갑니다. 이러한 착각은 위계의 반복을 강화할 뿐입니다.

문학은 이러한 위계를 감정적 거리두기를 통해 냉정하게 바라보게 합니다. 디드로의 유쾌하면서도 날카로운 풍자처럼, 웃음을 유도하면서 권력의 허상을 폭로하는 방식은 독자로 하여금 스스로의 위치를 성찰하게 합니다.

‘계급’은 단지 소득의 문제가 아니라, 존중받을 자격이 있다고 믿는 감정적 구조입니다. 그리고 『자크와 그의 주인』은 이 믿음이 얼마나 허약한 기반 위에 세워져 있는지를 문학적으로 해체합니다.

결론: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주인이자 하인이다

『자크와 그의 주인』은 계급 구조의 본질을 무너뜨리는 문학적 실험입니다. 그리고 오늘날에도, ‘갑을문화’라는 이름으로 여전히 지속되는 위계적 질서에 경고를 보냅니다.

진정한 변화는 갑과 을의 위치를 바꾸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이분법 자체를 무너뜨리는 감각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존중은 지위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관계의 태도에서 비롯됩니다.

디드로는 말합니다. “주인의 말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니다. 때로는 하인의 말이 세상을 더 정확히 본다.” 이 고전은 우리에게 단지 풍자를 넘어서, 인간 관계의 진정한 수평성에 대한 통찰을 남깁니다. 그리고 그것은 오늘, 우리가 직면한 사회적 구조 속에서도 여전히 유효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