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고전의 재해석

페스트(카뮈)와 팬데믹 이후 공동체 윤리 (카뮈, 페스트, 연대의 윤리)

by info-happyblog-2504 2025. 5. 10.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는 단순한 전염병 소설이 아닌, 위기 속 인간의 선택과 연대의 본질을 묻는 작품입니다. 이 글에서는 팬데믹을 겪은 현대 사회가 이 작품을 통해 무엇을 성찰할 수 있는지, 공동체 윤리 회복의 가능성을 중심으로 고찰합니다.

1. 『페스트』의 도시, 오랑은 누구의 모습인가?

『페스트』는 북아프리카의 한 도시 오랑에서 전염병이 퍼지는 과정을 통해 인간 존재의 실존적 조건과 윤리적 선택의 딜레마를 탐구한 작품입니다. 질병은 단지 생물학적 재앙이 아니라, 사회 시스템의 허약함과 인간의 이기성, 그리고 타인에 대한 무관심을 드러내는 거울로 작용합니다.

의사 리외는 ‘영웅’이 아닙니다. 그는 “자신의 일을 하는 것”이라 말하며 묵묵히 환자를 돌봅니다. 그러나 이 ‘평범한 행동’이야말로 카뮈가 말하는 실존적 윤리의 핵심입니다. 그는 거창한 이념이나 종교 대신 책임과 연대라는 인간의 기본 의무를 선택합니다.

오랑 시민들의 모습은 코로나19 시기 우리가 경험한 현실과도 겹칩니다. 질병이 터졌을 때의 혼란, 초기에 나타나는 부정과 무관심, 뒤따르는 공포와 격리, 그리고 서서히 드러나는 공동체의 균열과 회복의 가능성은 『페스트』가 오늘날에도 여전히 살아 있는 이유입니다.

2. 팬데믹 이후의 세계, 우리는 얼마나 변했는가?

코로나19는 단지 건강 문제를 넘어 사회 시스템과 개인의 삶 전체를 재구성한 사건이었습니다. 격리와 마스크, 사회적 거리두기, 재택근무는 사람들 간의 물리적 거리뿐 아니라 심리적 거리까지 벌어지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예상치 못한 연대를 경험하기도 했습니다. 의료진에 대한 박수, 자발적 마스크 기부, 서로의 안부를 묻는 메시지 등은 인간이 여전히 타인을 향해 마음을 열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이는 『페스트』 속 인물들이 서로 다른 출발점에서 결국 공동체를 위해 연대하게 되는 과정과 매우 닮아 있습니다.

팬데믹 이후 많은 이들이 ‘정상’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하지만, 우리는 그 전과는 다른 사회를 살고 있습니다. 비대면 문화, 디지털 플랫폼 중심의 삶, 소득 격차의 심화, 돌봄과 노동의 불균형 등은 공동체 구성원 간 신뢰와 협력의 윤리를 다시 묻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페스트(카뮈)와 팬데믹 이후 공동체 윤리 (카뮈, 페스트, 연대의 윤리)

 

3. 공동체 윤리의 회복, ‘우리’라는 감각을 다시 만드는 일

카뮈는 『페스트』를 통해 인간의 고통은 의미 없는 우연이지만, 그 속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타인과 함께 존재하는 것뿐이라고 말합니다. 리외는 “성공이 아니라 정직”을 말하며, 연대는 선택이 아니라 인간됨의 조건임을 강조합니다.

팬데믹 이후 사회가 회복을 말할 때, 그것은 단지 경제 회복이나 정책적 안정만을 의미해서는 안 됩니다. 개인화된 사회 속에서 ‘우리’라는 감각을 다시 만드는 것, 그것이 공동체 윤리의 시작입니다.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실천이 요구됩니다:

  • 나와 다른 집단에 대한 공감과 경청
  • 약자를 보호하는 제도적 장치와 문화
  • 돌봄 노동의 사회적 가치 인정
  • 데이터 중심 관리가 아닌 인간 중심의 위기 대응

『페스트』는 연대가 언제나 거창한 의지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매일의 사소한 책임과 선택에서 비롯됨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이 교훈을 팬데믹 이후의 시대에도 반드시 붙들어야 합니다.

결론: 리외처럼, 묵묵히 연결된 존재로 살아가기

『페스트』는 전염병에 대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것은 위기 속 인간의 윤리와 연대에 대한 실존적 선언입니다. 팬데믹을 겪은 오늘날, 우리는 리외처럼 ‘묵묵히 나의 자리를 지키며, 타인을 향해 책임지는 존재’로 살아가야 할 이유를 다시 찾고 있습니다.

‘정상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더 나은 공동체로 가는 것, 그것이 『페스트』가 지금 우리에게 건네는 진짜 메시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