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리아스』와 영웅 서사의 해체 (아킬레우스, 강함의 피로, 새로운 용기)

『일리아스』와 영웅 서사의 해체 (아킬레우스, 강함의 피로, 새로운 용기)

『일리아스』는 고대 그리스의 전형적인 영웅 아킬레우스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전쟁 서사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더 이상 그런 ‘절대적인 강자’의 이야기에 쉽게 공감하지 못합니다. 이 글에서는 『일리아스』 속 영웅서사를 되짚으며, 현대 사회가 요구하는 ‘새로운 용기’와 ‘다른 방식의 강함’을 생각해 봅니다.

 

 

 

1. 영웅은 왜 싸워야만 했을까?

『일리아스』는 트로이 전쟁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전쟁 이야기입니다. 주인공 아킬레우스는 신의 아들이자 무패의 전사로, 전투와 복수를 통해 영광을 추구합니다. 그는 친구 파트로클로스의 죽음을 계기로 다시 전쟁터로 복귀하고, 자신의 분노를 불사르며 적장을 무자비하게 죽입니다.

이 모든 서사는 고대의 ‘영웅이란 무엇인가’를 강렬하게 보여줍니다. 하지만 질문해 봅니다. 그는 정말 영웅이었을까요? 오늘날의 눈으로 보면, 아킬레우스는 오히려 분노와 복수, 명예에 집착하는 파괴적 인물일 수 있습니다. 그의 용기는 감정을 억제하지 않고 분출한 결과였고, 그의 싸움은 타인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기 감정의 정당화를 위한 전투였습니다.

2. 우리는 아직도 영웅을 원하나?

현대 사회도 여전히 ‘영웅’을 갈망합니다. 영화 속 슈퍼히어로, 정치나 기업에서의 리더, 혹은 SNS에서 떠오르는 인플루언서들. 하지만 그들에 대한 우리의 기대는 점점 양가적입니다. 완벽하게 강하고 흔들림 없는 인물보다는, 상처받고 흔들리지만 다시 일어서는 사람들이 더 큰 공감을 얻습니다.

『일리아스』의 영웅상은 더 이상 현대인이 바라는 이상형이 아닙니다. 무조건 싸우고, 이기고, 뺏는 이야기는 이제 회복, 돌봄, 포기, 연대 같은 서사에 자리를 내주고 있습니다. 이제는 묻습니다. “싸울 줄 아는 것보다, 멈출 줄 아는 것이 더 용기 있는 게 아닐까?” 영웅의 의미는 바뀌고 있습니다.

3. 강함에 지친 사람들

지금의 우리는 어릴 적부터 ‘이겨야 한다’, ‘더 잘해야 한다’는 교육을 받아왔습니다. 그 결과, 우리는 종종 감정 표현을 약함, 실패를 무능력, 쉬는 것을 게으름으로 여기게 되었습니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영웅’은 일종의 내면화된 기준이 되었습니다. 스스로에게 강해지라고, 참으라고, 멈추지 말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 강함은 결국 우리 자신을 고립시키고, 실패를 숨기고, 고통을 인정하지 못하게 만듭니다.

『일리아스』의 영웅들도 결국 외로웠고, 자기 자신에게서도 벗어나지 못한 존재들이었습니다. 현대인은 이제 강함보다 공감과 회복력, 느림과 멈춤에서 더 큰 용기를 찾고 있습니다.

4. 새로운 영웅은 누구인가?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영웅은 아킬레우스처럼 칼을 휘두르는 전사가 아니라,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고, 타인의 고통에 함께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영웅이란, 더 이상 남을 구하거나 승리하는 사람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자기 자신을 돌보고, 실패한 사람과 손잡고, 때로는 포기할 줄 아는 존재. 『일리아스』의 서사를 해체한다는 건, 영웅의 자리를 다시 정의하는 것입니다. ‘강한 자’에서 ‘깨어진 자’, ‘싸우는 자’에서 ‘이해하는 자’로. 그것이 오늘날 우리가 꿈꾸는 새로운 영웅의 모습일지도 모릅니다.

결론: 영웅의 자리를 우리 모두에게

『일리아스』는 위대한 서사지만, 그 안에 등장하는 영웅상은 이제 현실의 삶과는 거리가 먼 이상화된 상징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서사를 다시 읽으며 우리는 알게 됩니다. 진짜 영웅은 전쟁터에 있지 않습니다.

지금 이 시대를 버텨내며, 스스로를 보듬고, 타인을 이해하려 애쓰는 모든 평범한 사람들— 그들이 바로 오늘날의 ‘조용한 영웅’입니다.

이제 우리는 묻습니다. “당신의 영웅은 누구인가?” 그리고 그 답은 어쩌면, 당신 자신일지도 모릅니다.